-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을 놓고 얘기를 할 때, 우리는 주로 삶의 편의성이 가장 크게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정서적인 부분까지 크게 바꿔놓았다. 현대인이 당연하게 느끼고 공감하는 고독, 외로움이라는 개념이 기술의 발달하기 이전에는 꽤 다른 뜻으로 쓰였다. 특히 전화나 라디오 같은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전에는 당연히 여기던 무료함과 지루한 시간을 이들이 대체하면서 오히려 항상 새로운 것을 하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기준이 생겼다. 기술의 발전은 더 나아가서 사람들의 문화를 바꾸고 지금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 책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감정을 분류하여 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우리의 심리를 바꿔놓았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 우리가 말하는 허영심(vanity)이나 자아도취(narcissism)는 지금보다 훨씬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어차피 인간 개인은 한날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므로 자신을 뽐내고 과시해봤자 우리가 생각하는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도중에 사진기의 발명이 이러한 인식을 인식을 서서히 바꿔가기 시작했다. 기존에 비싼 돈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었던 초상화보다 훨씬 실제 모습과 가깝게 표현이 가능했던 사진은 점점 사람들의 환상을 채워주는 도구가 되었다. 지금 나의 모습은 그렇지 않지만 미래에 내가 원하는 모습을 한 채로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 요즘같이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사람과 연락이 가능하다는 점은 우리를 외로울 틈이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불과 몇백년 전까지는 이런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지금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너무나 외롭고 심심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감정을 대신했던 것이 바로 종교였다. 인간의 불완전한 부분, 이를 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간접적으로나마 의지하게 해준 종교의 역할이 컸다. 그러던 와중에 등장한 전보와 전화의 등장은 이러한 개념을 서서히 바꿔버렸다. 오히려 현대사회는 대도시에 수 많은 사람들과 살면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마치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없듯이, 배고픔이 있어야 포만감이 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일부분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마저 모호하게 만들었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 심지어 18세기 이전까지는 거의 쓰이지 않던 말)의 의미가 둘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향까지 보인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결코 부정적이고 나쁜 감정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 의해 인식이 바뀐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 외로움과 더불어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옛날에 비하면 많이 달랐다. 이 역시 단어사용의 빈도를 통해 확인이 가능한데, 영어로 boring이라는 말이 생긴 지는 불과 몇 백년 밖에 되지 않았다. 산업화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들어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을 하게 된다. 그들이 하는 일은 공장의 부품처럼 계속되는 반복적인 지루한 과정이다 보니 일을 마치고 난 뒤에는 지친 감정을 회복시켜야 할 자극적인 것이 필요했다. 점점 흥미로운 자극은 더 강렬한 자극을 필요로 하고, 급기야 일을 적게 하고 긴 휴식시간이 지루함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외로움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감정을 종교적 소명이라 생각하며 견디는 습관은 사라졌고 사람들의 자극에 대한 역치값은 높아졌기 때문에 지루함이라는 감정은 옛날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도시생활을 하며 일과 휴식이라는 단조로운 패턴이 이를 악화시킨다. 그나마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지루함은 또 다른 재미를 찾기 위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 우리를 끊임없이 변화하게 만드는 감정이 아닌가 싶다.
- '경외감'이라는 감정도 어원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감정이 섞인 단어였다. 존경, 숭배, 두려움 등이 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것을 봤을 때 느끼는 신성한 감정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점점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과거의 놀람의 수준이 이제는 예전만 못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종교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경외감이 줄어든 경향도 있다. 예전같았으면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의한 것이라고 여겼다면, 현대인은 끊임없이 이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연구를 하면서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어찌보면 종교에 대한 믿음이 점점 줄어들며 자아도취나 자만심이 커지는 것도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다.
- 개인적으로 요즘 사회는 특히나 온갖 종류의 분노와 혐오로 가득한 세상이라고 본다. 이유는 다양하고 복잡하겠지만 미국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산업화로 인한 근무 중 스트레스를 마땅히 풀 데가 없었던 사람들의 분노가 뜻하지 않게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표출되었다.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면 자신의 평판에 하나도 좋을 점이 없기에 어떤 식으로든 다른 방식으로 화를 풀어야 하는데, 이러한 매체들이 그들의 분노를 드러내는데 잘 들어맞았다. 자동차의 등장도 이를 더 부추겼다. 퇴근 길에 차 안 혼자만의 공간은 마음대로 감정을 드러내도 상관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미디어의 등장도 거의 같은 방식으로 돌아간다고 본다. 과거에 분노가 하던 역할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목소리로 이용되어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었지만, 지금같은 가상의 공간에서의 분노 표출은 마치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감정이 사회의 분위기와 함께 한다는 점을 알고,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느낌이 기술의 발전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돌아본다면 좀 더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