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전문직에 종사한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막연하게 굉장한 환상을 갖게 된다. 평생 안정적으로 적어도 생계는 걱정하지 않고 산다는 기대 같은 것들 말이다. 나 역시도 그런 전문직을 존경하며 준비했었던 기억이 있기에 특히 그렇다. 그래서 너도 나도 전문직을 도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와중에 요즘 세상은 점점 발전하는 인공지능에 의해 절대로 넘볼 수 없다고 여겼던 직종들도 언젠가는 대체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과연 전문직이라는 것이 정말로 옳고 세월이 지나도 대체되지 않는 안정적인 직종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던 찰나에 이 책을 접했다. 책에서는 평생 한 우물만 깊게 파야 좋다는 인식이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앞으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는 몇 가지 분야에 두루두루 능통한 것이 왜 유리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먼저 왜 사회 시스템이 하나의 분야에 몰두해야 인정받고 대접을 받도록 만들어 졌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의 위인들은 대부분 '폴리매스'였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폴리매스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적어도 세 가지 일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한 분야에 몰두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이상인 마냥 생각하게 됐을까? 아마도 결정적인 원인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 라고 말할 수 있다. 산업혁명은 이 전까지 있었던 인간의 삶의 방식을 크게 바꿔버렸다. 개인보다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개인은 거대한 기업을 위한 부품으로 일하도록 강요받았다. 우리가 의무적으로 받는 공교육도 큰 틀에서 보면 국가와 기업을 위한 훌륭한 시민(나쁘게 말하자면 훌륭한 부품)이 되도록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본래 호기심이 강한 생명체다. 그런 기질이 지금의 인류를 발전시켜 왔고, 폴리매스는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과도 같다. 실제로 인류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인들은 거의 대부분 폴리매스였다.
- 너무나 많은 위인들이 이에 속하므로 모두 나열할 순 없지만, 나의 눈에 들어온 위인 중 한명은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였다. 수학책을 조금만 살펴보면 뉴턴과 함께 미적분의 개념을 설립한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임을 알 수 있지만 사실 그는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변호사, 외교관, 엔지니어, 사서, 연금술사, 역사가 등등 수 많은 분야에서 일하며 연구하고 남들이 보면 자신이 초라하게 보일 만큼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실 모든 학문은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 모두 있다. 실제로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하나의 초점에 매몰되려 하지 않고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맥락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유명한 스티브잡스의 'Connecting the dots'라는 표현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게 아닐지 싶다. 학문이라는 것이 애초에 여러 분야로 세세하게 나눠진 이유도 인간이 쌓아 올린 지식의 양이 많아지면서 분업화가 이뤄졌고, 노동자들을 각각의 분야에 맞는 교육을 시키며 그 것이 사회의 규범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다.
- 그렇다면 현대사회는 이미 전문가 위주의 시스템이 확고히 자리 잡고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폴리매스를 강조하는가?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공지능의 발전은 점점 인간이 하던 업무를 대체하며 인류를 서서히 위협하고 있다. 내가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폴리매스가 하는 각각의 다른 영역에서의 관점으로 또 다른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자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고, 이는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가는데 더 적합한 생존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어떤 한 분야에 대해 파고들 때는 짧고 굵게 한 다음 적당한 휴식을 취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분야도 관심있게 보는 방법이 나에게 맞는다. 가끔씩 다른 길로 새면 나 자신을 몰아세우고 쉼없이 달려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방식이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라는 나름의 위안을 얻게 되었다.
- 마지막으로 폴리매스에 대해 정확히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폴리매스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맛보고 넘어가라는 말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적어도 각각의 분야에서 의미있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난 다음에 3개 이상의 다른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이렇게 된다면 점점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맞추어 좀 더 유동적이고 기술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폴리매스가 되는 길에 더 다가가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중대한 문제들은 대부분 우리가 학습받은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난해한 문제들이 많다. 예를 들어 요즘 관심있게 보는 영역인 기후위기는 단순히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므로 이를 낮추자는 말이 아니다. 과학적인 기술을 통해 접근하는 것 외에 기후위기로 인해 파생되는 식량문제, 인종간 갈등 심화, 빈부격차 심화 등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방면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여러가지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하므로 폴리매스의 관점이 더더욱 요구된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자신을 발전시키고 인간의 본성에 맞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폴리매스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