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하는 역할에 대해 글을 본 적이 있다. 주로 여성이 임신했을 때 자궁을 수축하게 해서 분만을 돕거나 자식을 돌볼 수 있도록 모성애를 자극하는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들 때도 이 호르몬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유대를 쌓고 서로 협동하게끔 도와주는 호르몬이라고 보면 좋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호르몬은 다른 집단과 적대적인 관계를 쌓을 때도 분비된다고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들게도 하면서 싫어하게끔 하는 데도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심리는 알다가도 모를 법하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인간의 특이한 군중심리를 대중적으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소셜미디어를 빼놓고 이런 군중심리를 논하기 어려우므로 이에 대한 부분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
- 우리의 의식은 내가 누구이고 나를 제외한 다른 것들을 구분짓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의식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충분히 납득할 만 하다. 그러나 최근의 신경과학자들의 의식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의식의 존재이유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를 토대로 무엇이 나와 친하고 친하지 않은가를 구분하기 위해서 생겼다는 설이 있다. 얼핏 보기에는 나 개개인은 모두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정신은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인간은 벌들과는 다르게 공기 중에 화학물질을 매개로 사회적으로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세였지만, 오랜 기간동안 같이 지낸 여성들의 무리에서 생리주기가 같아지는 경향 등을 놓고 봐도 연관성이 없다고 논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경향을 파악한다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규범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예측이 가능하다. 어떤 사회 안에서의 규범이 바뀌려면 그 집단의 약 25%만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면 바뀐다고 한다. 좀 더 완고한 규범조차도 30% 정도로도 충분히 바뀐다고 한다. 특히 이러한 전략이 잘 먹히는 좋은 방법은 이야기로 풀어서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구조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어 있다.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우리는 서로 이해하며 하나가 되어간다.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뭉치며 집단을 이뤄가는데 이 점이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부정적인 면도 크게 부각되었다.
- 요즘 세상에서 소셜미디어를 제외하고 세상을 논하기는 힘들다. 온갖 수 많은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생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들과도 전 세계 어디에서나 소통하며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모여 소통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생기는 단점은 바깥 세상에서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철저히 나의 기호에 맞는 정보와 사람들만 만나기가 더 쉽다. 한 마디로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면만 마주치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아지들도 어릴 때부터 주변 강아지들과 놀면서 적당한 무는 힘의 정도를 서로 배워 가며 크지만 너무 어린 나이부터 혼자 기르게 되면 이러한 사회성을 배우지 못한다고 한다. 무슨 말이냐면 온라인 상에서는 비언어적인 특성(표정, 뉘앙스 등 미묘한 감정)들을 학습하지 못하고 말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나의 예를 들자면 나는 처음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카카오톡을 접했을 때 특히 이러한 점 때문에 가끔씩 친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오해가 생기는 경험을 많이 했다. 아마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그렇다면 소셜미디어는 그저 기술의 발전에 의한 부산물일 뿐인가?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게시물을 '눈팅'하는 사람들은 행복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만, 적절히 글을 게시하고 서로 소통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행복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결론이 난다. 자신과 뜻이 맞고 친밀감이 공유되는 집단과 어울리려고 하는 생명체의 습성은 아마도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세상인 복잡계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경계를 지어서 누가 나의 편이고 적인지를 따진 다음부터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싶다.
- 이런 와중에 특히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10대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소셜미디어 사용에 대한 우려가 많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디지털 이민자(뒤늦은 나이에 디지털 기기를 접한 세대)들은 어떻게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야 올바르게 사용하는 지를 절제할 수 있지만 나이가 어린 세대들에게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그렇다면 무작정 스마트폰을 못쓰게 하는 것이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것일까? 사실 10대들이 소셜미디어에 모이는 이유는 태생적으로 그들도 사회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장소가 요즘 시대에는 디지털로 넘어간 것 뿐이므로 디지털 이민자들의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안된다고 본다. 사회규범이라는 것은 시대와 흐름이 바뀌면서 계속해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규칙이나 규범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음을 가져야 하며, 의심하는 버릇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규범 안에서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류는 진화하며 생존해왔기 때문이다.
- 인류는 다른 종과는 다르게 집단생활을 하며 진화해왔고 그렇게 하면서 최상위 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개는 독특하게 인류와 공생관계로 가는 전략으로 우리와 같이 생존해왔다. 실제로 강아지들은 사람이 채워줄 수 없는 감정적이거나 정서적인 면에서 공백을 채워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관계로 공생해왔던 것이다. 과거에 비해 요즘 세대의 사람들은 개인주의에 좀 더 가치를 두는 듯 하지만, 우리 인류가 진화해온 방식을 놓고 봤을 때 집단으로 뭉쳤을 때 더 배려하고 이타적이며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면이 드러났다. 이런 면에서는 종교의 역할이 단순히 쓸떼없는 믿음을 갖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쉽게 뭉치며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유용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따지고 봤을 때 종교를 믿는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말이 안되는 행위라 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보상이나 우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현명하게 유도하는 좋은 수단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면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어서 삶의 행복감을 높이는 유의미한 사례도 많이 있다. 이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인류는 작게나마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