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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25 똑똑하게 생존하기
  2. 2021.04.04 볼륨을 낮춰라
  3. 2021.03.21 유머의 마법
  4. 2021.03.07 실험의 힘
  5. 2021.02.21 미야자키 월드
  6. 2021.02.07 결혼학개론
  7. 2021.01.24 마음챙김
  8. 2021.01.10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1. 2021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정보의 홍수라는 표현도 대략 20 전부터 들어왔던 같은데, 정확히 말하자면 홍수를 넘어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뉴스에서 쏟아지는 사실여부가 불명확한 보도들, 그럴싸해 보이는 연구 결과로 포장된 허위 정보 진실을 파악하려면 근거 없는 헛소리를 지어내는데 노력의 배가 필요하다. 역시도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하는 누군가가 헛소리라고 판단되는 말을 했을 말의 진위여부를 따지고 드는 자체가 굉장히 피곤해 진다는 것을 최근 몸소 깨달았다. 성격상 그런 부분을 넘어가지 않으려 하다보니 반박하는 과정에서 드는 정신적 에너지도 물론이고, 옳은 말로 반박을 해봤자 말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결국 상대방은 듣지 않는 이래나 저래나 역효과를 일으켰다. 반대로도 무심코 지나쳐간 많은 헛소리에 속아 넘어갔지만 진실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넘어간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번 책을 통해 우리 곳곳에 숨어있는 헛소리를 파헤치고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하다.
  2. 인터넷에는 많은 자극적인 낚시성 뉴스들이 많다.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으로 먼저 이목을 다음에 제목과는 상관없는 내용으로 이어진다거나,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모호한 의문문이나 가정으로 문구를 시작해서 클릭을 유도하는 방식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당하고 있는 수법이다. 어찌 보면 이들이 사악하고 선천적으로 도덕심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판단하는 보다는 뉴스가 가진 속성과 배경의 변화에 주목을 하면 이유를 있다. 뉴스라는 자체가 소식을 팔아 돈을 버는 비즈니스로 시작했고, 인터넷이라는 혁신적인 기술과 함께 더더욱 많은 언론사와 뉴스가 생겨났다. 결과, 어떻게든 헤드라인에서 먼저 이목을 끌어내서 클릭을 하게끔 만들어야 광고비를 받을 있도록 유도하고, 우리는 안에서 휘둘리는 것이다. 온라인 뉴스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통해 돈을 버는지를 알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를 파악한다면, 현명하게 이러한 속임수에서 빠져나갈 있을 것이다.
  3. 흔히 인간은 어떤 현상을 두고 A B 일으키는 원인이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 무엇이 현상의 원인이 것이라고 가정을 다음에 그에 해당하는 결과가 보이면 그것을 사실인 믿기 시작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A B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아무 연관이 없는 값을 우연히 비교했더니 마치 상관관계가 있는 마냥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뇌가 모든 현상에 이유를 찾고 불확실성을 없애려는 인간의 본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위험을 예측하고 손실을 피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해온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가 마쉬멜로를 얼마나 참고 기다리느냐를 통해 미래의 성공가능성을 예측한다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하지만 실험도 마쉬멜로를 얼마나 참느냐가 직접적인 성공을 보여주지 못한다. 마쉬멜로를 오래 기다린 친구들은 그저 애초에 부족함이 없는 집안의 분위기 덕에 다른 아이들보다 오래 인내할 있었을 뿐이다. 차라리 태어난 집안의 경제수준이 아이의 미래 성공여부를 좌우한다고 보는게 맞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단편적인 값을 가지고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신중한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사실확인을 하는 방법에는 통계나 수치화를 통한 결과가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할 있으나, 역시도 많은 함정이 숨어 있다. 어떤 정당이 집권을 하든, 정당이 옳은 방향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이는 데이터나 그래프일지라도 살짝만 관점을 바꾸고 보여주고 싶은 결과만을 보여주면 충분히 우리를 속이는 방법이 많이 있다. 시각적으로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래프에서 숫자로 나온 비율보다 넓이를 과장해서 그린다던지, 히스토그램에서 시작점이 0부터 시작하지 않는 값을 물결표시 없이 그림으로써 차이가 극단적으로 보이게 하는 여러 기묘한 수법이 있다. 아무리 통계적으로 조사한 자료가 정확할지라도 이러한 시각화 사기(?) 통해 과장해서 보여준다면 누구나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뉴스에서 참고자료로 잠깐 나타나는 이러한 그래프를 누가 이렇게 철저히 확인하며 보겠는가? 당신이 언론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싶지 않다면 번거롭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확인한다면 현명하게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있을 것이다.
  5. 제목처럼 이렇게 훌륭한 '헛소리 까발리기' 기술을 익혔고, 세상에 숨어있는 헛소리를 밝혀낼 있으니 남들과 얘기할 틀렸다고 보이는 부분을 신랄하게 고쳐준다면 어떻게 될까? 말고도 다른 좋은 양서들을 통해 남들이 모르는 부분을 내가 안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적나라하게 고쳐주는 것도 과연 항상 옳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에는 틀렸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마시멜로우 실험의 경우도 누군가가 사실검증을 하기 전까지는 그저 어릴 때의 참을성이 미래의 성공 가능성을 보장하는 척도로 많은 책에서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우리가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부분도 정확한 검증을 한다면 보는 관점에 따라, 그리고 우리가 생각했던 보다 훨씬 복잡한 요인이 숨어있을 수도 있는 것이므로 정말로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무턱대고 주장했다가 틀리게 된다면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봉변을 조금이라도 줄일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거짓 정보를 가려낼 있는 혜안을 기르는 뿐이라 본다. 거짓된 방향은 달콤하고 쉽지만, 우리가 정말로 추구하고 원하는 진실은 언제나 쉽지 않고 고된 길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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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바를 언어를 통해 전달하기를 좋아한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므로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나도 그렇지만 특히 많은 사람들은 소리를 아예 못듣는다는 경험이 어떨지 별로 생각을 안해봤을 수 있다. 청각장애인에 대해 한가지 놀란 점은 원래는 말을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못 듣기 때문에 서서히 자신의 목소리를 잊고 결국 말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다. 난청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보청기 등을 통해 청력을 회복하고 나서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소리가 있는지를 깨닫는다 한다. 이렇게나 우리 삶에 중요한 감각인 청력을 때로는 소중한지 모르고 너무 방치하는 경우가 생긴다. 가령, 스피커소리를 너무 크게 듣는다던지, 귀마개를 착용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소음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일하는 등 말이다. 청각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점을 하나 하나 파헤쳐보면 소음으로부터 귀를 얼마나 보호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2. 우리의 청력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게 작동한다. 특히나 양쪽 귀를 가짐으로써 정말로 미세한 차이를 읽어낼 수 있다. 들려오는 소리가 어디서부터 나오는지를 정밀한 귀의 센서덕분에 우리는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어폰 양쪽에서 나오는 아주 아주 작은 미세한 싱크 차이를 우리 귀는 민감하게 알아챌 수 있고, 이는 기계로 정밀측정했을 경우 대략 0.0004초 정도의 오차를 감지한다고 한다.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화로는 같이 일하던 사람 중에 (아마도 거의)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분이 계셨다. 본인은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고 전화를 받을 때 부자연스럽게 자꾸 한 쪽 귀에만 전화기를 대고 받는 모습을 봤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싶었지만 같이 대화를 하다 보면 자꾸 내가 하는 말을 무시하는 건지 못듣는 건지 자주 내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성격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분이 혹시 귀가 잘 안들리냐는 말을 계속해서 전해듣게 되었다. 그 분이 한 쪽 귀가 좋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고 생각해보니 얼마나 수 많은 불편함과 편견과 함께 살았을지가 조금이나마 공감됐던 사례였다.
3. 불행히도 이렇게나 소중한 청력을 우리 세대는 지나치게 혹사하고 방치하는 환경에 놓여있다. 산업혁명의 발달로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던 지나치게 큰 기계소음과 총소리, 이어폰 등등 수 많은 첨단문물은 우리의 청력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실제로 세계대전 당시 수 많은 군인들이 종전 후 청력에 영구적인 장애가 생겼다는 점, 대장장이들이 청력을 보호하지 않은 채 수십년간 일한 결과 돌이킬 수 없는 청력장애가 생겼다는 점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마치 나빠진 시력을 교정하기 위해 안경을 쓰듯 보청기를 쓰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에는 실제 사례들이 그닥 완벽한 해결책이 아님을 보여준다. 일단 청력을 담당하는 세포들은 다른 기관과 다르게 스스로 재생하지 못한다. 그리고 보청기를 끼는 것이 안경을 쓰고 완벽한 교정이 되듯이 썩 만족스러운 성능향상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청각과 관련된 신경을 외과적인 시술로 교정한다는 것도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눈이 나빠지는 것과는 맥락이 크게 다르다. 청력보호에 신경을 많이 써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그렇다면 아예 들리지 않는 게 아닌 잘 들리지 않을 때, 즉 청력이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에 썩 좋지는 않을 때 생기는 부차적인 문제가 있다. 사실 사람은 온전히 말의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히 인지하고 대화하는 것 같지만 의외로 다른 감각(눈치 또는 맥락, 자주쓰이는 관용구 등)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말을 알아듣는다. 청력이 약하게 되면 말을 알아듣는데 다른 감각을 더 사용하게 되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청력이 약하고 이런 과정으로 듣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사람을 피로하게 만들며, 전반적인 삶의 만족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청력은 특히 강하지 않은 지속적인 소음에도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점진적으로 약화되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니 이러한 점을 미리 알고 주의하면 좋을 듯하다.
5. 우리는 주로 앞을 못보는 것은 굉장히 굉장히 안타깝고 안 좋은 것으로 여기지만, 상대적으로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못보는 것보다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시력이 나빠지는 것과 청력이 나빠지는 경우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고유의 어려움을 가져다주며, 특히 청력은 회복이 안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 점 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청각소음과 시각소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자면 우리가 보기 싫은 것은 그냥 눈을 감고 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소음은 우리가 듣고 싶지 않다고 귀를 틀어막고 살 수 없는 법이다. 또한 소음의 기준은 단순히 높은 데시벨의 소리가 아니라는 점, 미묘하게 거슬리는 작은 소리도 사람에 따라 소음으로 여겨질 수 있으므로 층간 소음 문제가 붉어지는 이유가 되는 듯 하다. 소리에 관해 이러한 몰랐던 사실을 인지한다면, 한 층 더 우리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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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마법

카테고리 없음 / 2021. 3. 21. 23:48


1. 나에게 있어 유머란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다. 재밌고 웃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좋아하나 뭔가 너무 유머에 치우치다 보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모르지만 특히 친한 친구들과 모이게 되면 서로 유머욕심을 내버리는 바람에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유머는 사람들 사이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지만 언제나 유머 자체가 주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어느 선 까지가 적정선이고 상황에 맞는 유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던 찰나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당신의 유머감각을 높여준다고는 보장할 수 없지만 적어도 대화하는 도중에 적어도 똥볼(?)을 차느라 상황을 악화시킬 확률은 낮출 수 있다고 본다. 매번 유머가 웃기거나 성공할 순 없어도 최악만이라도 피하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예전의 어렸을 적 나를 떠올린다면, 철없던 마음에 그저 어떻게 하면 재밌어 보일까 하는 생각에 무리수를 많이 던졌다. 유머가 먹힐 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가 더 많았고, 때로는 오히려 말을 안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많이 일어났다. 그런 경험을 통해 지금은 나만의 노하우를 알아냈고, 실제로 책에서도 같은 말을 언급한다.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조사에서 유머는 항상 모두를 웃기게 하는 것 보다는 큰 웃음을 주지 못하더라도 적절한 상황에 쓰였느냐가 더 구직자를 긍정적으로 보이게 한다고 보고된다. 그리고 자신이 유머감각이 없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다. 유머감각은 마치 운동을 하면서 근육이 단련되는 것처럼 길러진다고 한다. 나도 그런 점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적절한 유머감각을 위해 노력했던 경험으로 보건데,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3. 우리가 말하는 유머는 어떤 점 때문에 재밌다고 느끼는가? 유머의 핵심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정말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사람들만이 우리를 웃기는 듯 하지만 얼핏 파헤쳐 보면 그들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을 잘 끄집어내는 것에 능한 것이다. 여담으로 누군가를 웃기는 유형의 사람은 여러가지겠지만 정말로 웃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코미디언들은 대게 철저한 준비를 통해 어떤 것이 재밌는지 아닌지를 철저히 메모하고 난 뒤 그중에서도 타율이 높은 것만을 뽑아내서 선보이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무엇보다도 유머는 사실에 바탕을 둔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리고 무언가가 웃기게 들린다는 것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왜 내가 그렇게 느끼고 말했는지를 듣는 사람이 바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시도한 개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다시 설명을 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유머가 아니다. 마치 이 글처럼 유머를 분석해서 왜 웃긴지를 알아내는 것은 전혀 재미없게 보이듯 말이다.
4. 개인적인 경험에 덧대어 유머에 대해 좀 더 말해보자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유머는 없다고 본다. 특정한 집단이나 문화, 사소한 뉘앙스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재밌게 느껴지겠지만 아닌 사람도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만약 내가 던진 유머가 별 반응이 없다면, 무엇이 원인이었는지를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직장에서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 흔히 재미없지만 억지로 웃어줘야 하는 유머를 '부장님 개그'라고 한다. 왜 그러한 별명이 붙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직장에서의 상사들은 그들의 개그를 피드백 받을 일이 전혀 없다. 직장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의 직급 차이는 이러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없게 한다. 만약 내가 상사의 입장으로 부하 직원을 깎아 내리는 식의 농담을 한다면 서로 동등한 지위가 아닌 이상 부하 직원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지위 차이를 인식한다면 직급이 높은 사람이 자기 비하 농담을 하는 것이 웃음을 자아낼 수도 있다. 이처럼 각각의 상황에 맞는 농담이 무엇인지를 되돌아 보고, 그에 걸맞는 농담을 찾아낸다면 한 층 더 모두에게 즐거운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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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의 힘

카테고리 없음 / 2021. 3. 7. 23:58


  1. 우리는 살면서 인과관계를 따질 때가 많다. 무엇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고, 그래서 이러한 원인으로 이렇게 됐을 거라고 추측한다.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서 실험을 하고 논문을 내는 경우같이 극히 일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우리 일상 생활에 수두룩하게 많다. 그러한 실험을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결과를 실시간을 반영하기 아주 좋은 공간이 바로 인터넷, 온라인 상에서 그러하다. 우리는 이미 전자기기와 온라인을 떼어 놓고 삶을 살아갈 없고 특히 이러한 쪽으로 직업을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이러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책을 통해 간단한 인과관계 실험이 어떤 의미를 갖고, 이를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해볼지 고민한다면 분명히 도움이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면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고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에게 공유가 지를 고민하는 과정에도 이러한 실험을 쉽게 적용할 있을 하다. 제목을 가지 형태로 나눠서 같은 중에 무엇이 반응이 좋은지, 사소하지만 좋아요 버튼을 누를 있도록 가볍게 유도하는 글을 넣음으로써 어떻게 달라지는지 적용할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2. 그렇다면 이런 실험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유리한 기업은 테크 기업들임이 확실하다. 요새 사람들이 많이 시청하는 유튜브만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UI(User Interface) 바꾸는 모습을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경우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사소하지만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계속해서 조금씩 바뀌는 부분을 계속해서 눈여겨 봤다. 구글은 어떻게든 사용자가 계속 유튜브에 머무르면서 시청시간을 늘리게 하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러한 점에서 유튜브가 지속적으로 사소하지만 어떻게든 사용자가 영상을 많이 시청할 있도록 업데이트한 부분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가령 예를 들자면 나는 자동재생 버튼을 항상 놓고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을 골라보도록 하는 습관이 있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나마 유혹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름대로 나만의 방식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바일 UI에서 댓글창이 바로 뜨지 않게 하고 클릭을 해야만 전체 글이 보이도록 바뀐 것을 알아챘다. 대신에 댓글이 차지하던 공간을 추천영상으로 채워 넣은 모습을 보고 그들도 많은 테스트를 통해 어떻게 하면 이익인지를 시험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외에도 사용자가 모르는 많은 데이터를 통해 수십 또는 수백만건의 작은 실험들을 하면서 무엇이 이익인지를 알아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3. 이러한 실험들을 통해 기업들이 이득을 보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유튜브의 예를 통해 살펴보자면 언제나 소비자는 착취당하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실험을 통해 우리 자신도 알지 못했던 부분을 통계적 데이터를 통해 있음을 많은 사례를 통해 배운다. 에어비엔비의 사례를 통해 있는 점은 집주인이 어떤 인종이냐에 따라 예약률이 유의미한 정도로 벌어짐을 있었다.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자신은 인종차별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특정 인종에 대한 편향이 데이터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어쩔 없는 인간이고, 이러한 인지편향적 행태를 보임을 자각한다면 중요한 선택을 하는 순간에 순간적인 직감과 감에 의존하기 보다는 통계적 사실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 결정하는 습관을 길러야 함을 깨달을 있다. 다른 실험으로 교사들에게 어느 시점에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학생들의 동기부여를 자극하는지를 알아본 결과 미리 지급하고 목표달성을 못하면 다시 회수하는 쪽이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경우에는 손실회피편향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으로 보아 우리 삶에도 손실회피편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한다면 도움이 싶다.
  4. 이러한 실험을 통한 결과는 생각보다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경향이 크다. 책에 소개된 대기업들도 많은 실험을 통해 그들의 예측을 완전히 깨버리는 결과를 맞이했다. 이러한 점을 비즈니스에 적용해본다면 우리가 사업을 때만큼은 직관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있다. 자신의 믿음을 과신하기 보다는 정말 간단한 AB 테스트( 하나를 고르는 실험) 통해 우리의 직관에 의존하지 않고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관찰하면서 손실을 최대한 피할 있는 것이 좋아 보인다. 사업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점을 항상 머릿 속에 상기시킨다면 최악은 면할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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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흔히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듯하다. 역시도 그런 애니메이션에 대해 들어봤고, 오래 되었지만 어렸을 적에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이런 애니메이션이 모두 같은 회사의 작품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고,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한채 그냥 봤던 같다. 미야자키는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2013 '바람이 분다' 마지막 작품으로 은퇴하기까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고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책을 통해 있었다. 그의 작품에서 가끔씩 나오는 전쟁에 관한 장면은 의미 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그의 유년기 시절에 있었던 일본에서의 2 세계대전 당시 개인적인 경험이 섞인, 나름대로 그의 철학을 담고 있는 내용이라는 점은 책을 읽기 전까지 없었다.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그의 철학을 작품에 녹여내는 과정까지 숱한 어려움과 난관에 부딪혔지만 계속해서 그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 개인적으로 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미야자키가 추구하는 만화의 철학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국 중심의 애니메이션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 많다. 지루함을 느끼는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이유로 지적되는 점이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야기와 캐릭터" 위주에 중점을 두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를 중시하는 탓에, 미국의 개그 중심의 만화와는 근본적으로 정서가 다른 것이다. 사람 마다 선호하는 것이 다르므로 어떤 장르가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는 없지만, 잔잔한 캐릭터의 감정의 변화와 분위기를 중시하는 쪽을 선호한다면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 취향에 맞을 있다고 본다. 
  3.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담긴 의미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에서 출발했다. 센이 부모님과 함께 도착한 곳에서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잃고 온천에 갇힌 채로 일하게 되는 모습은 그저 재미를 위한 스토리가 아니라 당시 미야자키가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않고 오로지 안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걱정하는 모습에 온천에서 자기 훈육을 위한 관문을 통과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빗대어 돼지로 변하게 하는 장면 역시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려는 모습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외에도 다른 작품들의 스토리를 보자면 자연과 인간의 전쟁, 또는 공공연히 전쟁의 폐허를 보여주기 위한 내용임을 있다. 단순히 아이들에게 재미를 안겨주기 위함이기 보다는 그만의 철학과 고집이 묻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음에도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로 당시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분노 때문에 그랬다는 이유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전쟁에 대해 혐오하는지를 있다. 어쩌면 그의 그런 한결같은 신념이 훗날 지브리 스튜디오의 많은 명작을 만들어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그의 업적은 대중들에게 충분히 주목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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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학개론

카테고리 없음 / 2021. 2. 7. 18:39


  1.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말을 떠올릴 , 대부분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소중한 반려자를 만나 평생을 같이 하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을 꿈꾸는 것에 비해 가지 결점이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에 대비해서 연습을 하거나 미리 예상을 대책을 세우거나 있다. 반면 결혼은? 생각보다 그저 서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면 그것이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우리는 이를 위해 예행연습을 하거나 연습을 없을 뿐더러(그러기 위해 이혼을 하고 재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 않는가?) 정말로 같이 살아보기 전에는 없는 부분들이 많으므로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결혼을 통한 관계는 크게 보자면 인간관계의 어느 부분에 속해있다. 나은 인간관계를 위해 여러 좋은 조언이나 책을 통해 도움을 얻듯이, 특히나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관계의 부류에 속하는 결혼생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면 이만큼 훌륭한 예행연습이 있을까 싶다. 나는 무조건 결혼하지 않고 비혼으로 살아간다 마음을 먹는다 하더라도 살다 보면 사람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지는 모르니나중을 위해서라도 책을 통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면 좋을 하다.
  2. 흔히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예로 들자면 어떤 사람이 나와 맞지 않으면 사람과 나는 애초에 타고나길 성격이 다르므로 그렇다는 말을 한다. 여기에는 가지 방법이 있다. 계속해서 만나야 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주의해야 하는가를 따져서 타협을 하며 나아가던가, 아니면 그냥 쿨하게 이상 만나지 않으면 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부부관계도 넓게 보면 그저 어떤 종류의 인간관계일 뿐인데 가끔 어떤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서도 나와 항상 맞는 "소울 메이트"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러한 갈등이 생기면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애초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과연 이런 영혼의 단짝을 이어주기 위한 제도로 먼저 만들어 졌을지도 의문이다. 특히나 결혼의 역할이 20세기에 비해 정서적인 면에서의 친밀감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미디어가 만들어 백마탄 왕자같은 환상을 버린다면 일단 부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단추를 꿰었다고 있다.
  3. 완벽한 짝이 없다는 점을 받아들였다면, 다음으로는 어떤 부부든 싸울 있다는 뜻이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부부관계를 떠나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상황이 어떻든 간에 사소한 언쟁 정도는 오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가령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인성이나 성품이 뛰어나서 그럴 수도 있지만 화를 내는 모습을 절대로 보지 못한 사람도 있긴 있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서 어느 한쪽이 매번 그렇게 넘어간다면 그건 분명히 쪽이 참는 것일 뿐이다. 싸움은 피할 없지만, 현명하게 싸우고 넘어간다면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다. 매번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사이인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불평하고 탓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라면 예의라는 명목하에 하지 않을 언행을 가족 사이에서는 쉽게 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상대방에게 정말로 문제가 있다 쳐도 비난하는 쪽으로 화내고 몰아가봤자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대로 고쳐지지 않는다. 비난을 하되 정말로 하고 싶다면 가급적 짧게 말하고, 탓을 정말로 하고 싶다면 웬만하면 직접적으로 하기보다는 다른 것을 탓하는 것도 좋아보인다.
  4. 결혼을 하고 애를 가졌을 때를 상상해본다면, 자녀와 배우자 누구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지를 고민해볼만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실제로 때문에 결혼생활을 참고 산다느니, 아니면 애를 낳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라는 등의 소리를 듣는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안전하게 아이를 성인이 될때까지 기를 있게 제도인 같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화목하게 유지하고 나아가려면 단순히 아이가 결혼의 맹목적인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애를 위해서라면 결혼생활이 맘에 안들고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더라도 참고 살아가는 것이 아이의 정서적인 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대충 생각해봐도 굉장히 좋지 않을 같지 않은가?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도 결혼 배우자가 아이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하다. 아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의 사소한 점을 보고 배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무엇보다 가정의 화목과 평화가 우선시 되어야 함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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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카테고리 없음 / 2021. 1. 24. 22:19

 


  1.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한다. 적어도 기준에서는 정신력(멘탈)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외부 환경에서 오는 무수한 자극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느끼느냐가 거의 전부인 같다. 그렇기에 아무 효과가 없는 약을 복용함에도 실제로 몸이 나아지는(플라시보 효과)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현대인은 불행히도 많은 외부 자극으로 인해 온전한 정신력을 갖추기 어려운 시대에 사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의 정신을 가다듬어 주는 마음챙김이 더욱 필요하다. 마치 모든 것을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식의 사이비 행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몸에 반응이 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우리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대략 짐작이 되지 않을까 한다.
  2. 책을 읽고 나만의 방식으로 마음챙김을 다시 정의하자면 " 감정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는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분리시키고 3 시각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명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 실천을 꾸준하게 하면서 효과를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하다. 역시 그러했고, 처음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그러겠지만 명상이 단순히 멍때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의 저자는 올바른 명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명상을 통해 얻으려 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서 수행해야 함을 말한다. 명상을 처음 시도하면 가만히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마음을 집중한다는 것이 웬만하면 쉽지 않음을 있다. 그리고 명상을 하면 반드시 바로 어떤 효과가 나타날 것을 기대한 하느라 마음만 조급해지고 뭔가 시원치 않은 부분이 생긴다. 중요한 점은 완벽해지려는 마음을 비우고 별다른 생각없이 그저 묵묵히 수행하라는 점이다. 오늘 명상을 5 했다면 다음에는 더도 말고 완벽해질 마음을 버린채 조금씩만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제대로 수행 가능하다면 절반 이상 준비가 되었다고 본다.
  3. 명상의 효과를 알기 전까지 마음 속에는 언제나 어떤 강박이 존재했다. (물론 지금도 없다고는 말할 없지만)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안된다는 마음 속에 살다보면 어느 순간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무기력을 경험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상황을 길게 보자면 과연 이렇게까지 나를 옥죄며 마음을 채찍질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싶다. 실제로 마음챙김을 통해 나에게 여유를 주고 설령 목표한 만큼 채우지 못하더라도 다독여주는 것이 실제로 주의를 흐트러뜨리게 하고 실수를 줄여 시간을 아껴준다고 한다. 옛말에도 그러하듯 "급할 수록 돌아가라" 금언이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4. 마음챙김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을 자책하고 미워해봤자 몸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 분비를 촉진할 뿐이다. 일이 풀리든 안풀리던 간에 일단 있는 그대로 상황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일례로 "스트레스의 " 이라는 책에서 설명하듯, 스트레스를 통해 우리는 고통을 인지한다. 중요한 점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우리 몸에서 정반대의 반응이 나타난다. 책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점을 소개하고 있다. 고통(스트레스) 피할 없는 반응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괴로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여기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마음챙김과 같은 명상을 통해 이러한 점을 항상 상기시키고 명상을 통해 훈련을 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믿음을 가지고 수행하느냐에 따라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도라이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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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은 누구나 지금의 삶보다 나아지길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나은 삶을 바라보며 싫은 일도 견뎌가며 자기개발을 하는 하다. 학창시절 문득 대학입시를 위해 공부를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보면 공부 잘하는 애들 중에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데 성적이 나오는 친구들은 그냥 타고난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일정 부분 맞는 같지만) 그렇다면 내가 나아지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 비해 나오는 성과도 어차피 타고난 것이니까 대충 해도 된다는 뜻일까? 그러다가도 이렇게 생각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한 실천을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다가 다시 의문이 드는 갈피를 잡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이뤄낸 성과가 노력인지 재능인지는 칼로 자르듯 이분법적으로 없다. 모든 요인을 정확하게 수는 없지만, 그나마 과학에 기초한 분석을 통해 어떤 점이 타고난 부분인지, 그리고 후천적인 요인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알고 다음에 자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면 뿐인 삶을 알차게 보낼 있지 않을까 싶다.
  2. 책을 읽으면서 특히 눈에 띄었던 부분은 '후성유전' 관한 내용이었다. 고백하자면, 평소 나는 패스트푸드를 즐겨먹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만 나는 특히 남들보다 좋아한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많이 먹는 것이 딱히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이유는 살이 거의 붙지 않는 체질이라는 점도 했다. 단순히 살이 찌느냐 마느냐로 음식이 괜찮다고 생각했었지만 만약 2세를 계획하는 중이라면 고민해볼 만한 이유가 생겼다. 내가 가진 식습관이나 심지어는 후천적으로 가진 취향이나 마인드셋도 후세에 영구적인 유전자로 전해질 있음을 보이는 생쥐 실험을 고려해본다면 내가 패스트푸드를 줄여야 하는 이유가 단지 체중 증가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외에도 중요한 점은 특히 서구식 패스트푸드가 장내 미생물 환경을 바꿔놓음으로써 동기부여나 자제력에 영향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내가 정말로 변화하고 싶다면 동기부여나 의지도 중요하지만, 우리 몸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조금이라도 알고 시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3. 글의 시작과 함께 언급했지만 공부나 학습에 관해서라면 개인적으로 가장 의문이 드는 부분이 (지금도 그렇지만) 인간은 과연 타고나는 것이 전부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까지를 의지로 바꿀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러한 부분을 알려면 일단 우리의 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원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타고나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환경적인 요소나 후천적인 요소가 얼마나 바뀌는가에 따라 우리의 모습도 무궁무진하게 변할 있다. 불행히도 불과 백년 전의 급격한 기술발전을 시작으로 현대 사회는 완전히 바뀌어 버렸지만, 우리의 뇌는 대략 만년 전의 인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이러한 점을 파악한다면 뇌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있다. 인류의 뇌가 이렇게까지 발달한 가장 이유로는 움직이기 위함이라는 설이 있다. 뇌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기본적으로 적당량의 운동과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더더욱 중요한 점은 바로 사회작용을 하라는 것이다.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 하나는 집단생활을 하며 다른 사람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4. 종교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간에(혹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 하나는 신이란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 혹은 종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나타난다. 종교를 믿지 않고,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그런 믿음을 갖는지 이해가 가지 않던 나에게는 그런 점이 흥미로웠다. 뇌과학 지식이 쌓이고 책을 통해서도 확인했지만, 우리 뇌는 불확실함을 극도로 싫어한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자연환경은 뇌에게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그로 인한 에너지 소비도 굉장히 비효울적이다. 신이라는 분이 있다는 믿음 하에 우리는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일 있고, 실제로 심신의 안정에 종교가 하는 역할이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보고 나서야 그나마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 뇌가 돌아가는 원리를 파악하고 있다면, 종교를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이 무엇이고, 반대로 맹목적인 믿음을 갖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분간하는데 도움이 같다. 
  5. 자기개발 서적은 이미 시중에 넘치나고, 우리가 알아야 지식도 너무 많아서 무엇을 받아들여야할지 혼란스러울 정도이다. 중에는 개인적인 경험이나 자신만의 결론을 통해 쓰여진 서적도 있을 것이고, 여러 방법을 통해 쓰여진 좋은 책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책이 정말로 신빙성이 있고 믿을만한 내용인지 읽어보고 느껴보기 전까지는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나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우리 인류가 진화해온 방향과 메커니즘을 토대로 조언하는 책이야말로 믿을만한 책이 아닐까? 어떤 부분이 타고난 부분이고, 타고난 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 다는 점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 식습관 다양한 요소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 지를 깨닫고 바꿀 있는 부분에 집중한다면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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